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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스플릿(Split, 2016)』은 해리성 정체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를 중심으로 인간 내면의 다층적 심리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23개의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진 주인공 케빈 웬델 크럼은 트라우마가 만든 복잡한 심리 구조를 통해 생존과 적응의 본능을 보여준다. 본문에서는 케빈의 심리와 영화가 전달하는 인간 존재의 양가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해리성 정체장애: 트라우마의 생존 전략
케빈의 해리성 정체장애는 어린 시절 심각한 학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감정적으로 버틸 수 없었던 공포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 안에 여러 인격을 만들어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해리(dissociation)’의 극단적 형태이며, 정신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DID를 가진 사람들은 위협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자아를 만들어낸다. 케빈의 경우 ‘패트리샤’와 ‘데니스’는 엄격함과 통제를 통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차단하고, ‘헤들윅’은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트라우마 이전의 자신을 유지하려 한다. 이 인격들은 각각 케빈이 마주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심리적 도구들이다.
2. ‘비스트’의 탄생: 억압된 본능의 표출
케빈 안에 숨어 있던 24번째 인격 ‘비스트’는 인간 내면의 원초적 본능을 상징한다. 그는 초인적인 힘과 감각으로 무장한 존재로, 케빈의 학대 경험이 만들어낸 궁극의 생존 기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드(id)가 억압되면 의식적 자아가 이를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극단적 상황에서 폭발할 수 있다고 본다. ‘비스트’는 억압된 분노와 힘에 대한 열망이 변형된 결과이며, 동시에 케빈의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심리적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이다.
3.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 케빈의 양가성
영화는 케빈을 단순한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가 된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가해자-피해자 역전(dynamic reversal)’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무력했던 케빈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비스트’를 만들어냈고, 이 존재는 다시금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융의 관점에서 케빈의 어둠은 억압된 그림자가 외부로 표출된 결과다. 이 그림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면에 가지고 있는 본능적 공격성과 생존 욕구의 상징이다. 영화는 이 양가적 존재를 통해 인간 본성의 복잡함을 드러낸다.
4. 생존과 적응: 케이시의 심리적 대칭
케빈과 대비되는 인물 케이시는 유사한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DID 대신 외부 세계 속에서 억압된 자신으로 살아남았다. 케이시는 케빈의 인격들과 마주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고, 두 사람은 ‘상처 입은 자들’로서 연결된다.
케빈이 케이시를 해치지 않는 이유는 그녀 역시 상처받은 영혼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공감(empathy)이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힘임을 보여준다.
결론: 스플릿은 내면의 생존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심리극이다
『스플릿』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이 작품은 해리성 정체장애라는 극단적 심리 상태를 통해 인간이 극심한 고통과 위협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지켜내는지를 탐구한다.
심리학적으로 케빈의 DID는 병리적 증상인 동시에, 절망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생존 전략이다. 이 영화는 질문한다. “누구나 내면에 ‘비스트’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는 그 비스트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더 나아가 『스플릿』은 억압된 트라우마와 본능을 외면할 때 그것이 얼마나 쉽게 파괴적 힘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상처와 고통을 직면하고, 그로부터 배운 교훈을 삶에 통합할 때 우리는 트라우마를 단순한 약점이 아닌 강인함의 원천으로 바꿀 수 있다.
진정한 치유는 비스트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통합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케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내면의 어둠과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그 어둠 속에서 발견한 생존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스플릿』은 이 질문을 통해 인간의 생존 본능과 심리적 복원의 가능성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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