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가행의 영화블로그

영화를 심리적, 과학적 관점으로 해석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 2025. 6. 23.

    by. 우가행1

    목차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Joker)'는 단순한 빌런의 탄생기가 아니다. 아서 플렉이라는 한 인물이 광대에서 범죄자로, 사회의 조롱에서 상징적 인물로 변해가는 과정은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 영화가 유독 관객들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깊은 몰입을 안긴 이유는, 단순히 연출이나 연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취약한 부분, 특히 정신병리(psychopathology)의 어두운 단면을 사실적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조커'라는 캐릭터가 보여준 정신병리적 증상과 그 사회적 맥락을 심리학 중심으로 분석한다.

      1. 아서 플렉, 그는 정신질환자였을까?

      영화 속 아서 플렉은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질환을 갖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신경학적 장애인 '조절불능 웃음발작(Pseudobulbar Affect, PBA)'과 유사하다. 이 질환은 대뇌의 감정 표현 조절 기능이 손상될 때 나타나며, 웃음이나 눈물을 상황과 무관하게 터뜨리는 증상이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단순한 신경학적 질환을 넘는다. 영화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그의 성장 배경—학대, 방임, 어머니의 정신질환, 사회적 단절 등—은 복합적인 정신병리를 암시한다. 아서는 조현성 인격장애(schizoid personality disorder), 반사회적 성격장애(ASPD), 우울증, 환각 증상 등을 동반한 복합적 상태로 해석될 수 있다.

      2. 반사회적 성격장애(ASPD)의 특징과 조커의 행동

      조커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공격성을 외부로 분출하며, 살인을 포함한 반사회적 행동을 감행한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분노나 복수가 아닌, 공감 능력의 결핍과 도덕 판단의 왜곡에서 비롯된다. 이는 DSM-5에서 규정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핵심 진단 기준과 부합한다:

      • 반복적인 불법행동
      • 타인의 권리에 대한 무시
      • 후회나 죄책감의 결여
      • 충동성과 공격성

      아서 플렉은 사회가 자신을 억압하고 조롱한다고 느끼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점차 타인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그는 스스로를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전환시키며, 그 과정에서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범죄자의 심리와는 차원이 다른, 병리적 자기 확장의 과정이다.

      3. 사회적 고립과 정신질환 – 조커는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조커'가 보여주는 심리적 병리는 개인의 내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극심한 경제적 빈곤 속에서 살아가며, 정신과 상담은 예산 삭감으로 중단되고, 사회는 그를 투명 인간처럼 취급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인 "당신들은 나를 볼 수 없어요."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존재의 무시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은 우울증, 조현병,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촉매가 된다. 실제로 미국 정신의학회는 사회적 고립과 정신질환 사이의 상관관계를 수차례 강조해왔다. 특히 도시 빈곤층에서 발생하는 정신병리는 단지 개인의 취약성 때문만이 아니라, 환경적 스트레스와 지원체계의 붕괴와 직결된다.

      아서가 자신의 웃음을 병으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주변에서 이를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낙인(stigma)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점점 더 내면의 고통을 외부로 투사하며, 결국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영화 조커

      4. 폭력의 자기 정당화 – '무정부적 나르시시즘'

      아서는 점차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는 자신이 살해한 사람이 나쁜 인간이었고, 사회는 그들을 옹호했기 때문에 자신이 정의로운 행동을 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심리는 임상심리학에서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 불리는 현상과 일치한다.

      도덕적 이탈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이나 비윤리적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피해자의 잘못으로 전가함으로써 죄책감을 회피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조커는 점차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회가 만든 산물"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며, 이는 반사회적 성향과 결합해 매우 위험한 형태의 자기 확신으로 이어진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이는 억압된 자기혐오(self-hatred)가 외부로 투사되어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커의 마지막 방송 장면은 이러한 자기 확신과 투사가 폭발하는 순간이며, 공적 공간에서 사적 고통을 선언하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5. 조커라는 거울 –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가?

      많은 관객들이 '조커'를 보고 느낀 불편함은 단지 폭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조커라는 캐릭터가 '나와 무관한 미친 사람'이 아니라, 현대 사회 속 소외되고 억눌린 자아의 극단적인 형태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조커는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약자들의 축적된 감정을 상징한다.

      조커가 탄생한 배경은 극단적이지만, 그 씨앗은 평범한 일상에 존재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무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은 모두 또 다른 조커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조커를 보고 공포를 느낀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 안의 그림자(shadow)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림자는 억눌린 자아의 일부분이며, 그것이 자각되지 않으면 외부에 투사되어 두려움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조커는 그러한 그림자의 화신이다.

      결론 – 조커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조커'는 단지 범죄자의 기원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취약성과 사회적 시스템의 결함이 어떻게 결합해 하나의 파괴적 인격체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심리학적 탐구다. 정신질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무겁게 던진다.

      조커를 외면하고 "그는 미친 사람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어지만, 가장 위험한 망각이기도 하다. 조커는 우리 모두가 무시하고 외면했던 고통의 집합체이며, 우리가 감정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돌보지 않는다면, 또 다른 조커는 언제든 탄생할 수 있다.


      참고문헌: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 Bowlby, J. (1980). Attachment and Loss, Vol. 3: Loss, Sadness and Depression. Basic Books.
      • Gross, J. J. (2002). Emotion regulation: Affective, cognitive, and social consequences. Psychophysiology, 39(3), 281–291.
      • Bandura, A. (1999). Moral disengagement in the perpetration of inhumanitie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3(3), 193–209.
      • Jung, C. G. (1951). Aion: Researches into the Phenomenology of the Self. Princeton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