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가행의 영화블로그

영화를 심리적, 과학적 관점으로 해석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 2025. 6. 28.

    by. 우가행1

    목차

      영화 『조커(Joker, 2019)』는 단순한 악당 탄생기의 틀을 넘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정신질환의 심리를 강렬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DC 유니버스의 빌런이 아닌, 한 개인의 고통과 붕괴, 그리고 왜곡된 정체성의 형성을 다룬 사회심리 드라마에 가깝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모해가는 과정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무관심과 배제, 그리고 정신건강 체계의 붕괴를 반영한다.

      이 글에서는 『조커』를 통해 현대 사회의 소외 구조,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 자아 붕괴 과정, 분열적 동일시, 사회적 분노의 폭력화 과정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심도 깊게 분석한다.

      1. 사회적 소외: 무관심의 고통

      아서 플렉은 끊임없이 거절당하고 무시당한다. 직장에서조차 조롱의 대상이고, 거리에서는 폭력을 당하며, 복지기관의 상담 프로그램조차 중단된다. 이 모든 경험은 그가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도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더욱 깊은 고립감을 경험한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라고 보았다. 소속감이 결여된 상태는 깊은 불안과 우울을 유발하며, 이는 자아 정체성을 약화시킨다. 아서는 가족, 친구, 사회적 시스템 그 어디에서도 안정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는 자존감 손상뿐 아니라, 인지 왜곡을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사회와의 연결이 끊어진 사람은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할 통로를 잃어버리며, 결국 자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영화 속 고담시의 음울한 분위기와 폭력적인 사회 환경은, 아서의 내면을 외부적으로 투사한 공간이다. 즉, 고담의 혼란은 아서의 내면 불안과 절망, 통제 불능의 상징이다. 도시 전체가 기능을 상실한 듯한 장면 배치는, 공동체의 붕괴와 인간 사이의 단절을 강하게 부각시키며, 아서의 정신적 불안정성과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2. 정신질환과 낙인: 이중의 고통

      아서 플렉은 웃음이 나오는 신경계 질환(PBA, 발작적 정서 표현 장애)을 앓고 있으며, 조현형 성격장애와 우울 증세도 함께 보인다. 그는 반복적인 트라우마, 가족 내 학대, 사회적 배제로 인해 복합적인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에 대한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 치료는 단순한 약물 처방에 불과하며, 복지 예산 삭감으로 인해 그마저도 끊긴다. 이는 곧 돌봄 시스템의 붕괴와 정신질환자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한다.

      정신질환자는 종종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 된다. 미국 심리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낙인(Stigma)』에서, 정신질환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배제는 본인의 고통을 심화시키고, 자기혐오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아서는 이러한 낙인을 내면화하며, 자신이 "병든 존재"라는 자기 개념을 받아들인다. 그는 더 이상 사회에 속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며, 존재의 정당성을 상실한 채로 방황하게 된다.

      심리적 고통을 겪는 이들이 치료와 공감 대신 단절과 조롱을 겪을 때, 고통은 외부를 향한 분노로 전이될 수 있다. 이는 이후 아서의 폭력적 행동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특히 조커는 사회로부터 무시당한 감정을 외부화함으로써,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는 사회적 배제가 어떻게 위험한 감정 전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3. 자아 붕괴와 왜곡된 동일시

      영화 초반의 아서는 연약하고 불안한 인물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무대 위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하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 이는 자아 정체감 혼란의 전형적 형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실현되지 않을 때, 인간은 종종 대체적 정체성을 찾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아 붕괴 현상이 발생한다.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청년기 이후에도 정체성 혼란이 지속될 수 있으며, 이는 자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아서는 어머니의 거짓된 과거를 알게 되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기준을 잃는다. 그가 믿고 의지해온 존재조차 거짓임을 알게 된 순간, 그의 정체성은 심각하게 균열되며, 그 틈을 '조커'라는 페르소나가 채운다.

      '조커'는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아서가 감정적으로 동일시하는 새로운 자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분열적 동일시(fragmented identification)'라 하며, 극단적 정체성 혼란에서 나타나는 방어 기제다. 기존 자아의 무력함을 지우고, 폭력성과 우월감으로 대체된 자아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의 작용이다. 이는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적 방어로 이해할 수 있으며, 현실을 왜곡하더라도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4. 광대의 가면: 억압된 자아의 해방

      아서가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서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그는 평소의 수동성과 연약함을 버리고, 웃고 춤추며 유쾌한 존재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기쁨이 아니라, 내면 고통의 과장된 표현이다. 아서는 본래의 자신으로는 도저히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없기에, 분장을 통해 완전히 다른 자아로 변화하려 한다.

      '광대'는 사회에서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기능하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억압된 감정과 진실을 은유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융 심리학에서 가면(persona)은 사회적 역할 수행을 위한 자아의 부분적 표현이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진짜 자아와 괴리되며 정체성의 왜곡을 초래한다. 조커는 가면이 진짜 자아를 삼켜버린 경우다. 그는 더 이상 가면을 쓰는 자가 아니라, 가면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인물이다.

      아서의 가면은 더 이상 사회적 방어 수단이 아니라, 폭력을 정당화하는 페르소나로 전환된다. 즉, 웃음 속에 숨은 분노가 폭발하며, 그는 조커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이는 억눌렸던 감정의 해방이면서도, 파괴적 방식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심리적 전환점이다. 동시에 이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의 탄생을 보여주는 장면이며, 억압된 감정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5. 집단적 분노와 영웅화의 착시

      영화 후반부, 아서가 방송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거리로 나서자 수많은 시민들이 광대 분장을 하고 그를 추종한다. 이는 단지 개인의 해방이 아니라, 사회적 분노가 한 인물에 투사되며 폭력으로 표출되는 집단 심리의 결과다. 시민들은 조커에게 감정적 동일시를 하며, 그를 자신들의 분노와 좌절의 대변자로 삼는다.

      사회심리학자 구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은 『군중심리』에서, 개인이 군중 속에서 도덕성과 자율성을 상실하고 집단 감정에 휘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서는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분노가 집중된 하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는 폭력적 대리만족의 구조이며, 개인의 고통이 집단의 욕구 해소 수단으로 전락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가 말하듯, "내 인생은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이 말은 고통의 부정과 함께, 사회적 현실을 조롱하는 냉소적 시선이 담겨 있다. 이는 조커라는 캐릭터의 위험성 – 피해자의 탈을 쓴 가해자 – 을 가장 잘 보여준다. 조커는 피해자의 서사를 입고 등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파괴와 혼란을 야기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는 관객에게 "고통은 정당화되지만,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 조커

      결론: 조커는 괴물이 아닌, 사회의 거울이다

      『조커』는 악인의 탄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한 개인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서 플렉은 처음부터 조커가 아니었다. 그는 치료가 필요했던 환자였고, 따뜻한 관계가 필요했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그를 방치했고, 끝내 분노와 절망의 상징으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

      조커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압축한 상징이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존재다. 그들을 병리화하고 격리시키는 대신,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지원이 필요하다. 조커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아서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공감인가, 두려움인가?


      참고문헌:

      • Goffman, E. (1963). Stigma: Notes on the Management of Spoiled Identity.
      • Fromm, E. (1941). Escape from Freedom.
      • Erikson, E. H. (1968). Identity: Youth and Crisis.
      • Jung, C. G. (1968). The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 Le Bon, G. (1895). The Crowd: A Study of the Popular Mind.
      •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